기도의 횃불을 높이 들어라!
박종기 목사(우리네교회 담임)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비텐베르크의 만성교회 정문에 내건 95개조의 대자보가 타락한 중세 카톨릭교회를 향한 개혁의 불길로 거침없이 타올라 전 유럽을 덮어 변혁의 세계를 오게 했고 개신교라는 진리수호의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500년이 지난 지금의 개신교는 역으로 세상의 개혁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 옛날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도 그 시대의 영적 어둠을 밝히는 횃불이 되었던 위대한 선지자였으나 그도 어느덧 영적 소진과 무기력에 빠져 로뎀나무 아래 앉아 절규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왕상19:4)
그에게는 더 이상 불같았던 믿음도, 패기도, 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엘리야를 향해 하나님은 집요한 사랑과 식지 않는 열정으로 다가오셔서 그의 고통이나 미래의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도 그를 지배 할 수 없도록 다시 회복시키십니다.
불 후에 세미한 소리로 찾아오신 여호와 하나님(왕상19:12)은 엘리야를 다시 일으키십니다.
이제 한국교회도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세미한 음성을 듣는 골방의 기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불같은 부르짖는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기도라고하면 나름대로 방법들이 있고 열심히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기도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어찌하였건 지금하고 있는 모습이 현재의 자기진단 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면 할수록 겸손해지는 것이 진짜 기도인 것입니다. 과거 한국교회는 기도와 성령역사의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불같은 시험 많으나 그 기도의 영력으로 모두 돌파해 나갔던 것입니다. 16세기 개혁의 횃불을 높이든 루터는 그 숱한 문제들과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도 하루3시간의 기도를 매일 지속한 이유는 그의 고백처럼, “만일 내가 새벽 3시간의 기도를 실패한다면 그날의 승리는 마귀에게로 돌아간다”라는 승리의 원동력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긴 시간 기도로 나아가면 분명해 지는 것이 ‘예수신앙’입니다. 왜냐하면 은혜의 보좌(히4:16)는 예수 보혈의 공로가 아니면 다다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직예수 오직복음’인 루터의 진짜 신앙이었습니다.
지금 목회의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인생의 막다른 처지로 인해 곧 죽을 지경의 막장일지라도 터널로 바뀌는 반전의 역사도 기도 할 때 일어납니다.
기도로 이기지 않으면 세상에 정신 줄 놓고 살다가 결국 그 곳이 무덤이 되고 맙니다.
기독교 2000년 역사가운데 지금처럼 반기독교의 세력이 교회를 무너뜨리려한 적이 없습니다. 성도와 교회의 정신을 타락시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의 모든 창조질서를 파괴하여 복음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려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악은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마25:25-26)이었습니다. 스나미 처럼 밀려오는 거대한 어두움의 영적 세력들을 우리 힘으로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500년 전 한사람의 기도의 사람이 그 거대한 어둠들과 싸운 영적 힘은 임계점이라는 자신의 한계를 넘는 기도가 있었기에 위대한 삶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1907년의 장대현교회로부터 시작된 전도에 대한 불타는 뜨거운 열정과 1970년대 이후에 일어났던 기도에 대한 깊은 고민이 불길처럼 번져야 합니다.
그런 일에 횃불 되는 불씨의 마음으로 임계점 3시간 기도의 법칙을 한국교회에 소개합니다. 모두다 타산지석으로 삼기를 소망합니다.